고령김씨 소개

“ 고령김씨 소개 ”



고령김씨 소개

고령 김의 원뿌리(根源)는 멀리 신라 4대 석탈해왕昔脫解王 9년(서기 65) 3월 金城(경주)의 계림鷄林에서 태어났다. 이름을 알지閼智 라하고 성은 金이라 하였으니 이 어른이 신라新羅 김씨金氏의 시조이다.

알지 대보공大輔公 7세손 미추왕味鄒王 대에 왕위에 올라 3 8 왕이 연면(連綿-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잇닿아 있음)이 신라를 통치하였으나 대보공 28세손 경순왕敬順王에 이르러 나라를 고려 왕건에게 넘겨줌으로 신라 992년의 찬란한 천년사직千年社稷 은 끝나지만 경순왕 은 아홉 공자公子가 있어 그 후손이 번창함에 관향貫鄕을 각각 분관分貫하여 여러 金氏가 탄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즉 첫째 일鎰은 마의태자∙第二子 굉鍠은 나주군羅州君 第三子 명종鳴鍾은 영분공永芬公과 第四子 은영殷說은 경주군慶州君에 봉해짐으로서 경주김씨가 되었고, 왕건의 외손자(낙랑공주의 아들)로 태어난 第五子 석錫은 의성군義城君∙第六子 건鍵은 강릉군江陵君∙第七子 선鐥은 언양군彦陽君∙第八子 추錘은 삼척군三陟君으로 봉해져 분관分貫 하였으며, 이후 순흥안씨順興安氏 비妃의 아들로 태어난 第九子 덕지德摯는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으로 봉해져 뒤에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가 되었다.

우리 고령김씨의 비조(鼻祖-가계家系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이신 경순왕의 第五子 석錫 (일휘一諱 중석重錫) 께서 의성義城을 식읍食邑으로 한 이 어른의 11세손이요, 1361년 (공민왕 10) 12월에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福州-옛 안동)을 임시 궁궐을 정하고 몽진蒙塵했을때 의성 일원의 도적 무리를 다스려 소란한 민심을 수습하고, 난을 평정한 공功으로 추절보절공신推節保節功臣 의성군義城君에 책봉되었으며, 태자첨사공太子詹事公 9세손 용비龍飛의 장손長孫이며, 전리좌랑典理佐郞 역임한 10세손 의 (宜) 의 장남長男이신 남득南得 (초휘初諱 기지麒芝: 어른의 처음 이름) 께서 1364년(공민왕 13)에 원나라 순제順帝가 고려 공민왕 폐위에 대하여 어사 유린紐繗을 고려에 보내어 사실을 탐문 조사하게 하자 공公이 접반위시랑接班慰侍郞으로 원사元使와 대좌對坐하여 국왕(國王-공민왕)의 억울함을 밝히자 원사는 감동하고, 이로써 원제가 의혹을 회오悔悟하여 공민왕을 왕위를 보존케 하였다.

이후 1365년(공민왕 14) 정월 공민왕 복위에 관한 사은사謝恩使로 원경元京에 갔다가 환국하니 공민왕이 감동하여 고양(高陽-고령高靈)을 식읍食邑으로 하여 영남嶺南에서 얻은 귀貴한 신히臣下라는 뜻으로 사명賜名 하시어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봉封 하였으므로 공의 후손들이 이 어른을 득관조得貫祖 (시조始祖)로 삼고 본관本貫을 고령高靈으로 하였으니 이름하여 고령김씨高靈金氏라 하였으며, 여기에서 의성김씨義城金氏와 나누어지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본관 및 유래

고령高靈 김金은 고령을 본관本貫으로 한다.
고령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고령은 고령김씨의 본향本鄕이며, 고령이란 지명이름이 있기까지 시대의 변천變遷에 따라 변화가 많았었다.

오늘날의 고령군은 서기 42년 신라 유리왕 18년에 뇌질주일(惱窒朱日-대가야왕)이 대가야국을 세워 이진아시왕이 되어 이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그 왕손이 16대 520년간 내려오다가 신라 진흥왕 23년 서기 562년에 신라에 병합되어 대가야군大伽倻郡이 되고, 서기 742년 신라35대 경덕왕때에 고양군高陽郡으로 변경되어서나, 고려 현종9년 서기1018년에 영천현靈川縣이되어 경산부(京山府-현세의 성주星州) 소속되었고, 조선 제19대 명종때 감무(監務-지방관)를 두었고, 1413년 조선 태종13년에 고양군高陽郡의 고高字와 령천현靈川縣의 령靈字를 따서 고령현高靈縣이 되었으며, 이후 1895년 고종 32년 지방 관제 개정 시 현縣을 군郡으로 개칭함에 따라 고령군高靈郡으로 되어 읍내邑內, 구음, 송천, 구곡, 우촌, 하미, 일량, 안림安林, 유천, 상동, 하동,고곡, 내곡, 관동 14개방 114개동 관할로 시작하였다.

고령군지高靈郡誌 또는 고령문화원 지명유래 편에 우리 고령김씨 선대의 고령 입향에 관한 기술記述 내용에 의하면 고려말에 의성인義城人 김남득金南得이란 분이 고려31대 공민왕을 계속 왕위에 제위帝位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령김씨高靈金氏로 분관分貫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봉封하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 되게 하였다.

그 분이 이곳을 나라로 부터 3가지 해害 (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害)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로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安林川 가의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아림娥林으로 부르다가 나중에 제방의 숲이 마을의 바람을 막아주고 제방도 튼튼하여  편안하게 한다고 하여 다시 안림安林으로 바꾸었으며, 그 후 조선조朝鮮朝 때 이곳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에 딸린 역驛이 이곳에 있어 안림역 또는 역촌으로 부르게  되었다.